국토교통부가 경기도 파주 운정에서 화성 동탄을 잇는 총구간 83.1km인 수도권 광역급행철도(이하·GTX)-A노선을 발표하면서 철도가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 말 지하급행철도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공개 기술토론회는 철도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민들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이번 시위는 우리나라 최고 부촌으로 손꼽히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청담동 주민들로 구성된 청담비상비책위원회의 요구는 ‘노선변경’이다. 예비타당성 통과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나는 원안대로 하거나 한강 하저를 지나는 대안 노선으로 변경해 달라는 주장이다. 현재 계획대로 노선이 청담동을 광통하게 되면 주민들의 안전 위협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다. 주민들은 GTX에 대해선 적극 찬성하지만 현재 기본실시계획안은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진행됐다며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았다. 주민들은 GTX가 지하 40m를 관통하다 보면 지반 침하, 건물 붕괴, 소음·진동 등 안전과 주거환경 침해 문제가 우려되는데도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를 향해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다. 스카이데일리가 GTX-A노선 건립을 두고 반발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는 청담동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와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반응 등에 대해 취재했다.
▲ 청담동비상대책위원회는 GTX-A 노선 변경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토부가 주민들의 동의를 제대로 얻지 않고 노선을 변경해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청 앞에서 GTX-A 노선 변경을 촉구하는 주민들 ⓒ스카이데일리
최근 우리나라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이 떠들썩하다. 주민들 사이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GTX-A사업이 주민들의 안전과 주거권은 무시한 채 정치적 성과물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게 일고 있다.
청담동 주민들은 정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노선변경을 추진했다며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이하·국토부)가 노선을 변경하면서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에서도 상식을 벗어난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통과됐다.
일방통행식 ‘GTX-A사업’ 두고 뿔난 부촌 주민들…“엉터리 환경영향평가 인정 못해”
GTX-A노선 사업은 파주 운정에서 일산 킨텍스, 서울 삼성동 등을 거쳐 화성 동탄신도시까지 이어지는 83.1㎞ 구간을 건설하는 공사다. 총사업비 2조9017억원으로 운영비를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는 민간투자사업(BTO)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요 거점을 직선 노선으로 연결해 10개 정거장을 만들 예정이다. 최고 시속 180㎞, 평균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전철이 들어설 예정이다.
당초 GTX-A사업 계획 발표 초기만해도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일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수 흘러나왔다. 기존 주택가 지하를 관통하다 보니 공사진행부터 향후 완공 후까지 안전 위협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특히 많았다. 최근 GTX-A 노선이 지나는 청담동 주민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여론이 일고 있다.
청담 주택가 주민들로 구성된 청담비상대책위원회(이하·청담비대위)는 정부가 GTX-A사업을 진행하면서 철도 노선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 제멋대로 변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선이 변경된 사실을 뒤늦게 접한 후 GTX-A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결과, 주민들의 안전과 주거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노선 변경을 강하게 촉구했다.
조형연 청담비대위 대표는 “정부가 발표한 GTX-A사업의 당초 예비타당성 조사에는 철도 노선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최단거리였지만 기본계획안은 압구정현대아파트의 집단민원이 우려된다며 이를 우회하도록 변경됐다”며 “변경된 기본계획안은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나온 철도 노선보다 250m나 길어졌고 공사비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변경된 철도 노선이 지나가는 곳엔 청담동 384세대가 거주하고 있는데 국토부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민원은 철저하게 무시한 채 공사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변경된 철도 노선에 대해서도 구청은 지난해 11월 16일부터 30일까지 14일간 주민동의를 받았지만 해당 내용이 담긴 등기를 받은 주민은 10% 수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김해인] ⓒ스카이데일리
또 다른 청담비대위 관계자는 “철도 노선변경에 대해 알게 된 주민들이 4550부에 달하는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한 채 지난해 12월 착공식을 진행했다”며 “국토부가 GTX-A노선에 대해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역시 허점투성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담비대위에 따르면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의 허점으로 지목되는 부분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청담동일대가 포함된 ‘GTX-A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료가 3차원 실물인 아파트건물이 아닌 2차원 모델로 발파진동영향을 평가했다. 3차원이 아닌 2차원 모델로 실험을 진행할 경우 비틀림부터 굴절, 변형 등의 결과 값이 실제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국토부는 고층건물에 필수적인 콘크리트 철근을 누락한 채 진동흡수력이 좋은 토사를 강조한 컴퓨터 실험을 진행해 실제 발파진동을 반영하지도 않았다. GTX-A노선이 완공된 후 열차에서 발생하는 진동도 상부로 전달되는 결과는 누락했다는 게 청담비대위의 주장이다.
아울러 국토부는 GTX-A노선이 통과하는 청담동 일대에서 10층 건물인 시티2차 아파트를 유일한 검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공교롭게도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 결과, 29층 건물 또한 10층 건물인 시티2차 아파트와 동일하게 나왔다. 환경영향평가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전문가들 “GTX-A 개통시 청담동 일대 지반 침하로 주택 붕괴 우려”
지난해 12월 착공식을 진행한 GTX-A 노선은 경기도 파주 운정에서 동탄까지 80km를 하루 100회 이상 운행할 전망이다. 이 노선은 일산을 거쳐 서울역과 용산, 성남, 용인, 동탄까지 이어진다. 주목되는 사실은 고속으로 달리는 철도가 쉴새 없이 달리다 보면 암반이나 지반이 약한 지역의 경우 지반침하 및 씽크홀 등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청담비대위는 “한강 인접 지역은 암반대 종류와 형상이 매우 불안정하고 특히 청담 지역은 파쇄대(단층에 따라 암반이 부스러진 지대)가 다수 존재해 암반 품질 지수가 100점 만점에 13~18점에 불과하다”며 “지반 침하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정성과 경제성을 봤을 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나는 예타안 노선이 비용 대비 효용이 가장 높고 고속철도 의미에도 부합한다”며 “예타안에 나와 있는 철도 노선을 반드시 변경해야 한다면 영동대교 한강 밑으로 일부 우회하는 강남구 대안 노선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김해인] ⓒ스카이데일리
GTX-A노선에 따른 지반 침하 우려는 청담비대위만에 그치지 않는다. 청담동 일대에서 22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명자(여·65) 씨는 “사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지냈는데 최근 언론을 통해 인천 삼두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삼두아파트 문제는 2015년 12월 시작된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 구간 지하도로 공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GTX의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우선 생각한 행정인지는 의문이 든다”며 “음식점에 오시는 대부분의 청담동 주민들이 GTX-A사업에 대해 불안감을 표출했다”고 말했다.
삼두아파트의 경우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건물 아래에 지하 터널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별 문제가 없었던 아파트가 지하터널 공사 이후 금이 가고 씽크홀이 생기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담동 주민은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노선변경으로 주민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지하에서 진행되는 발파작업으로 언제 발생할지 모를 소음·진동·균열 등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고 환경영향평가도 엉망인데 어느 누가 불안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역시 청담동 주민들의 주장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찬우 한국터널환경학회 부회장은 “현재 청담동 일대 지하수가 흐르는 위치의 지층은 세굴에 취약하다”며 “만약 GTX-A로 인해 지하터널이 생기면 지하에 빈공간이 생겨 이곳으로 지하수와 토사가 유출돼 지반침하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오상근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하안전영향평가로 공사 전 지하수 유출량을 평가하도록 했지만 얼마나 유출되면 문제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며 “지하수 유출량만큼 중요한 게 토사 유출량인데 이 또한 지하안전평가 기준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법적 절차를 준수했으니 문제없고 강남구의 대체 노선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강남구 대체안에 따르면 한강 하저(하천 지하)를 3km 넘게 통과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곡선반경이 줄기 때문에 운행속도가 제한돼 열차운영 효율이 저하된다”고 밝혔다.